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클랜시 브라더스 (문단 편집) == 토미 메이컴 탈퇴 이후 == 토미 메이컴은 사실 싱어송라이터. 1966년도에 처음 토미 메이컴의 자작곡이 클랜시 브라더스 앨범에 수록되었다. 1968년에는 토미 메이컴의 곡들 가운데 가장 명곡인 가 클랜시 브라더스 앨범에 수록되었는데,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앨범은 현재 절판되었지만,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된 이 트랙의 음원은 구입 가능하다. 심지어 국내 사이트에서도 팔고 있음.) 이러한 상황에서 1968년 토미 메이컴은 멤버들과 합의하여 1969년을 끝으로 탈퇴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다른 멤버들의 동의하에 1969년 토미 메이컴은 그룹을 탈퇴했다. 그러나 토미 메이컴은 멤버들 가운데 유일하게 2가지 악기를 다루고 있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새로 들어온 멤버는 [[보험]]회사 사장(사실 이것이 가업이었다)으로 아마추어 가수였던(실제로 앨범을 내기도 했다) 셋째형 보비 클랜시. 문제는 다룰 줄 아는 악기가 [[기타]]와 [[하모니카]]로, 리엄과 패디와 겹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2명의 세션맨이 들어오게 되는데, 이미 2인조로 활동하고 있던, 기타를 치는 에디 퓨리(1944~)와 밴조, 틴 휘슬을 연주하는 핀바 퓨리(1946~) 형제. 핀바 퓨리가 일리언 파이프도 다루는 관계로, 이 라인업에서 나온 두 장의 앨범에서는 일리언 파이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youtube(Yfy_bi6K7ig)] 1970년경, 를 부르고 있는 클랜시 브라더스. 그러나 이 두 세션맨은 1년 만에 그만두고, 1971년 보비 클랜시도 동생 리엄과 ~~치고 받고 싸우다가~~ 의견 충돌이 생긴 것으로 보이는 탈퇴를 하게 되었다. [[파일:external/clancybrothersandtommymakem.com/p25a_cb.jpg|width=333]] 1970년경의 클랜시 브라더스. 왼쪽부터 리엄, 보비, 톰, 패디이다. 가운데 물을 경계로 왼쪽은 30년대생, 오른쪽은 20년대생이다. 그리고 정말 의외의 인물이 멤버로 가입을 했는데, 잉글랜드 출신의 루이스 킬런(1934년생). 루이스 킬런으로 말할 것 같으면 초기 잉글랜드 포크 음악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슈퍼스타 가수이고, 최초로 콘서티나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들고 노래를 반주하는 데 사용하도록 시도하여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보통 콘서티나는 솔로로 연주를 하거나 다른 사람이 노래할 때 선율을 깔아 주는 역할을 하는 악기이다.) 다행히도 루이스 킬런은 밴조, 틴 휘슬은 물론 콘서티나와 스푼까지 다양한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관계로 클랜시 브라더스 음악에는 새로운 변화가 오게 된다. 사실 루이스 킬런은 이미 1960년대 말에 클랜시 브라더스의 세션맨(콘서티나)으로 앨범에 출연한 적이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 루이스 킬런 덕택에 클랜시 브라더스 앨범에서 콘서티나의 부드럽고 따뜻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클랜시 브라더스는 1960년대 전성기 때만큼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인기를 끌게 되는데... 그 와중에 폭탄이 터졌다. 1974년 그룹이 공중분해된 것.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멤버들이 각자 갈 길을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룹은 결국 공중분해되었고, 패디 클랜시는 목장 경영, 톰 클랜시는 연기, 리엄 클랜시와 루이스 킬런은 솔로 활동으로, 각자 길을 찾아 흩어지게 되었다. [youtube(AEctl1312H4)] 1970년대 TV 출연 방송분. 라는 곡을 부르고 있다. [[파일:external/clancybrothersandtommymakem.com/p26_lk.jpg|width=333]] 1973년경의 클랜시 브라더스. 맨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패디, 루이스, 리엄, 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